한운리, 자은도의 시작
자은도 둔장어촌체험마을이 해넘이길 출발지점이다. 마을 앞 삼거리에서 한운리 쪽으로 길머리를 잡는다.
마을이 ‘구름에 둘러싸인 반달’ 형국이라고 해서 ‘한운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닷바람 막아주는 해변 송림과 깃봉산이 반달을 둘러싼 구름이고 그 품에 안긴 마을이 반달인 셈이다.
한운리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면 마을과 마을 앞 푸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이 시원해지는 푸른 풍경 저 멀리 한운리 바다가 있다.
한운리는 자은도 첫 마을이다. 자은도에는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섬사람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 그로인해 섬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한운리 앞 증도에서 석씨 일가가 바다 건너 한운리 해변으로 들어와서 마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석씨 일가가 처음 발을 내딛은 한운리 해변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나무 두 그루가 관문인 양 서있다. 바다로 머리를 내민 방파제 끝까지 가서 뒤돌아선다.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방풍림이 평온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산허리길을 걷다
해넘이길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이제부터 바닷가 산허리길로 접어든다. 바다가 보이는 산허리길, 길가에 풀썩 주저앉아 게으른 하품을 하는 누렁소의 눈망울이 무슨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 걸까.
그렇다. 이 길은 누렁소의 하품처럼 게으르게 걸어야하며, 누렁소의 눈망울처럼 맑게 바라봐야 한다.
약간의 오르막길은 땀을 흐르게 하고 피를 잘 돌게 한다. 몸이 부드러워지고 눈이 맑아진다. 바다 향기 머금은 바람이 산비탈 풀꽃과 나무를 지날 때마다 여행자의 머리카락도 헝클어진다. 땡볕에 흘린 땀이 바람에 식으며 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덥지만 상쾌하다.
길 저 아래 작은 해변이 나뭇가지 사이로 빤히 보인다. ‘소한은해변’이다. 예전에는 해변에 마을이 있었고 마을 앞 바다에서 파시가 열렸다고 한다. 마을도 파시도 모두 사라진 그곳에 예전의 그것처럼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가고 한가로운 시간만 가득 고였다.
남은 길을 접으며 걷는 오후, 송곳 같은 그림자도 땡볕에 녹은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걷다가 꽃을 만나면 그 옆에 앉아 사진을 찍고 마음에 담는다. 망개떡을 싸는 망개잎도 보이고 발치 길가에 낮게 피어 반짝이는 빨간 산딸기에도 마음을 준다. 이 길에서는 휴식도 그렇게 하는 거다.
둔장해변과 솔숲길
‘전망 좋은 곳’이라는 작은 안내판 뒤 저 아래에 둔장해변과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둔장해변은 처음에 출발했던 둔장마을의 바다다. 둔장마을은 어촌체험마을로 이 지역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고기잡는 방식인 ‘독살’ 등 바닷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해변에 도착한 뒤 마을로 돌아와 걷기여행을 끝내도 된다. 더 걷고 싶은 사람 앞에는 바다 바로 옆 솔숲길 3km 정도가 남아 있다.
솔숲길은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딱 좋다. 천천히 걸으며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서 만난 모든 것과 그 길을 걸으며 느꼈던 소회를 이야기하며 걷다보면 늘 푸르른 소나무처럼 또 다시 온 몸에 생기가 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