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목조건축을 찾아서
한국형 목조건축을 찾아서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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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영 소장 | 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Talk! Talk! Open Your Heart

 

“건축의 너무 지나친 조형성이나 선동적인 행태에 빠지는 것이 아닌 디테일한 재미에 빠지게 됐습니다.
인류가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구조의 자유로운 형태가 가능해져 건축이 매우 쉬워졌는데, 목구조는 그렇지가 않아요. 어떤 구법을 해야 작은 나무로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목조는 재료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 보여지는 구조 자체가 조형미로 나타나야 하고, 단열성능 등 기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이 따라 붙어서 건축가들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만드는 재료입니다”

 

1980년대 중반, 최삼영 소장이 필드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가 처음 설계사무소에 들어갔던 당시만 해도 ‘나무가 들어가면 비싸진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목재는 ‘고가의 인테리어 소재’라는 인식이 강했다. 게다가 목재는 불에 약하고 내구성도 약하고 습기에도 약하다는 오해가 팽배해 건축자재로서 경쟁력을 가지지 못했다. 가격과 기능 모든 면에서 시장성을 잃은 목재는 건축분야에서 외면을 받게 됐고, 급기야 건축교육에서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초창기 건축기사시험에는 목구조가 존재했으나, 이마저도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지게 된 것. ‘목구조 건축에 대해 교육받은 사람이 없으니 교육시킬 사람도 없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만은 없다. 아무리 건축가라고 해도 전체 건축에서 1%도 안되는 목구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목재의 매력에 푹 빠지기 전에는 말이다.

 

뉴질랜드의 목조주택 매력에 빠지다
최삼영 소장은 2000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수상자로 선정돼 뉴질랜드 답사를 갔다가 그곳에 있는 목조주택을 보고 큰 감명을 받게 된다. 경사지를 그대로 두고 자연 속에 잠시 묻혀진 형태로 지어진 집을 본 뒤, 그간 땅을 깍고 평탄화해서 집을 올리는 우리들의 방식이 자연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다는 걸 느꼈다. ‘자연이 많은 나라에서는 집을 저렇게 지으면 되겠구나’ 뉴질랜드의 목조주택은 산지가 많고 경사지가 많은 우리나라에도 좋은 사례가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한옥의 역사로 보면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한 고건축 문화재들은 모두 목재입니다. 사실 관리만 잘하면 목조가 오래간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고, 나무가 주는 느낌이 워낙 좋아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어요. 답사 전에까지만 해도 목조주택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뉴질랜드 답사는 건축가로서 최삼영 소장이 목조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 민마루
▲ 민마루
나무로 만든 1호집, 나의 집
목조는 콘크리트 하중의 1/20이다. 목조주택은 그만큼 가벼운 집이다. 이는 최삼영 소장이 직접 집을 지어보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이유기도 하다. 이런 자신감은 곧장 실천으로 옮겨졌다. 목조로 자신의 집을 짓기로 한 것. 직접 잡부일까지 해가며 공사를 진행했고, 이렇게 완성된 것이 ‘민마루Ⅰ’이다.

 

“내 집을 지어 실패하면서 자신감이 더욱 붙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남의 집을 지어보라고 했으면 못했을 겁니다. 집을 짓고 나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직원들도 공부를 시켜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목조로 지어본 사람은 그 매력에 깊게 빠지게 됩니다”
처음 지어본 목조주택이어서 실수가 많았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서구적인 삶과 우리 삶이 다르므로 서구식의 목조주택을 도입할 땐 우리 것으로 치환시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민마루Ⅰ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목조주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아서 2000년대 들어서도 1년에 단독주택 한 채 정도 시공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민마루Ⅰ을 짓고 나서는 집을 지어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나는 목조 신봉자가 아니다
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는 목조주택에 대해선 2등이라면 서러울 정도로 국내 가장 대표적인 건축설계사무소다. 그간 수많은 단독주택을 목조주택으로 지었으며, 대형건축을 다룰 때도 나무를 직접 체험해 보라는 의도로 목조를 부분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힘든 부분까지 목조를 고집하진 않는다.

“목재는 건축에 있어서 재료 중 하나입니다. 옷에도 여러 가지 재질의 옷이 있죠. 기능에 따라 속옷, 겉옷, 등산복, 작업복 등 다 다르듯이 건축에도 기능에 맞는 재료들이 다르죠”

 

순수예술가가 아닌 이상 건축가가 목재만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래서 건축가에게 목조전문가라는 말이 일종의 편향으로 비칠 수도 있어 썩 달가울 리도 없다. 또한 건축가에게 목재는 재료일 뿐, 제재, 가공 등 전문 영역까지 알 필요도 없으므로 목조전문가라는 말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 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목조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프로젝트를 압도하지 못한다.


“목조는 다른 과학에 비하면 그다지 깊은 공부는 아닌 듯 합니다. 왜냐면 나무를 베고 가공하는 진짜 전문가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기 때문이죠. 우리에게 목조나 콘크리트는 건축 재료의 하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재는 여러 재료 중 특별한 재료임에 분명하다. 특히 최삼영 소장의 건축적 지향과 목조는 조화로운 동침을 하고 있다.

“사람의 피부와 밀접한 건축일수록 자연적인 재료를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옷을 벗고 들어가는 침실이나 목욕탕 등은 목조를 적용했을 때 갖는 혜택이 더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깝게 근접해 있는 집이야 말로 나무를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 레드스쿨
목조건축의 진화를 허하라
알면 알수록 공부하고 싶고,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목조건축이다. 수많은 완공작을 가진 그도, 아직 국내 목조건축은 걸음마 단계라고 진단한다.

 

“목구조 구법이 나라마다 다릅니다. 예전에는 이것들이 나름 다 맞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우리 기후와 생활방식, 정서에 맞는 목구조는 기존의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간 서양식 목구조 방식이 우리에게는 틀린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목조주택을 할 때마다 점점 더 가시밭길을 걷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것’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최삼영 소장은 결국 이에 대한 답은 우리 ‘선조’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옥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형 목조주택을 말하면 ‘한옥’을 떠올리는데, 이 시대 한옥을 굳이 주장하고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혹시 “우리 것이 워낙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옥은 사실 불편한 점이 많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한옥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진화돼야 한다고 말했는데, 진화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갑자기 서양식 목구조가 들어오면서 ‘한옥은 한국형’이고 현대식 목구조는 서양 것이라는 오해가 형성됐다. 하지만 최삼영 소장은 “전통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발전이 아니며, 이 시대 한국인의 삶에 맞는 가장 좋은 것이 새로운 한국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한국형이라는 말에 발목 잡히지 말았으면 합니다. 단독주택이나 소형건축에서 목구조는 지구 환경적으로 좋고 인간에게 이로우므로 많이 권장돼야 할 재료라고 한다면, 재료의 구법중에서 우리 정서와 생활에 맞는 구법들을 잘 만들고 개발해서 좋은 것이 있으면 다 한국형 해야 합니다”


▲ 소소헌
재료는 이차적, 자연에 대한 태도가 중요
그럼 그가 말하는 ‘선조들의 지혜’는 무엇일까. 그가 보기에 조선시대에는 재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했다. 바로 건축가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다.

“건축주들의 요구사항에 따라 지으니,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건축가들은 건축주입니다. 다만 당시에는 성리학적 유교적 기초와 사고 아래서 집이 지어졌습니다. 그런 사상과 철학이 잘 반영되다 보니 집이 자연과 조화로움을 잘 갖췄습니다”

건축가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관계 맺어주기’이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일이다. 그럴려면 자연도 잘 알아야 하고 인간도 잘 알아야 한다. 조상들은 그걸 잘 만들어 줬다. 최삼영 소장이 보기에 우리 조상들의 가장 빛나는 건축적 유산은 바로 ‘자연에 대한 배려’다.

“이것이 선조의 오래된 지혜입니다. 우리 시대에 잊지 말고 현재 목구조에 잘 반영해야 합니다. 재료는 이차적이며, 오히려 지어지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짓는지가 중요합니다”

최삼영 소장은 오늘날의 목조주택은 ‘다시 자연으로’ 복귀하는 사회 전반의 트렌드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또한 부동산 개념이 재산 가치에서 실사용으로 변화하는 것도 목조주택에게는 호기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무는 태생적인 재료예요.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가까웠던 재료이고, 원초적으로 집을 지어왔던 재료죠. 요즘 옷들도 자연에서 추출한 재료로 만드는 것이 트렌드가 됐어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건축 재료도 다르지 않은 추세입니다”

나무를 경계하지만 나무 예찬을 숨기지 못하는 건축가, 그를 통해 목조건축의 진정한 매력은 나무라는 재료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선조적 지혜에서 찾아야 한다는 고언을 만나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