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월대 푸른 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제월대 푸른 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 나무신문
  • 승인 201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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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괴산 제월리

▲ 괴강으로 내려와서 제월대 절벽을 바라본다. 절벽 위에 고산정이 보인다
1928년부터 10여 년 동안 신문에 연재한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 선생이 태어난 집을 돌아보고 난 뒤 괴산 읍내에 들러 올갱이국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하늘은 맑고 파래서 홍명희 선생의 발걸음이 머물렀던 제월대로 가는 길이 가볍다.

 

제월리 집
제월리에 있는 집은 홍명희 선생이 1924년부터 살던 집이다. 홍명희 선생은 1919년 괴산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옥살이를 하게 됐고 옥고를 치르고 나와 이사를 한 집이 제월리 집이다. 아마도 옥살이 때문에 가세가 기울자 제월리 집으로 이사를 한 듯 보인다.

제월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홍명희 선생이 살던 집을 알리는 이정표가 하나도 없다. ‘제월리 365’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간다. 구불거리는 좁은 길 끝에 차가 멈춘다.

대문 없는 기와집으로 들어간다. 기와집 뒤에는 깔끔하고 단정한 집 한 채가 보이고 한쪽에는 잔디가 깔린 작은 마당이 보인다.

잔디가 깔린 작은 마당이 소공원이다. 소공원 자리에 본채가 있었고 현재 남아 있는 기와집은 사랑채다. 소공원 잔디 위에 작은 비석 하나가 이곳이 홍명희가 살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제월리 집은 여행지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다. 주인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허락을 받은 뒤에 집을 구경하려고 했는 데 대답이 없어 조심스럽게 돌아보고 나왔다. 시골 농번기 한낮이면 집이 비기 일쑤다.

 

고산정에 오르다
다음 목적지는 제월대다. 푸른 절벽 위에 올라서서 굽이도는 물줄기와 푸른 들판, 산줄기가 어우러지는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제월대다. 그리고 그곳에는 ‘벽초 홍명희 문학비’가 있다.

제월리 집에서 제월대까지는 약 1km 정도 거리다. 제월대 주차장 한 쪽에 문학비가 보인다.

▲ 홍명희가 살던 제월리 집
2000년에 건립한 문학비에는 사연이 있다. 홍명희 선생이 월북을 했고 북한에서 고위직 간부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보수단체가 문학비 건립을 반대했던 것이다. 1998년에 문학비를 세웠으나 그로 인해 철거됐고 그 이후 보수단체와 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가 협의를 거쳐 2000년에 지금의 문학비를 세울 수 있었다.

문학비 글씨는 신영복 선생이 썼다. 문학비 뒤에는 홍명희 선생이 중국 상해에서 박은식,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향을 모색했으며 1919년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내용과 항일운동단체인 신간회를 결성한 일과 1928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소설 <임꺽정>을 연재 했다는 내용 등이 새겨있다.

문학비 앞 언덕길 초입에 ‘제월대’라는 글씨가 새겨진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소나무숲이 보이고 그 숲에 정자가 하나 보인다. 고산정이다. 홍명희 선생도 제월대, 이곳 숲길을 걸어보았으리라.

 

푸른 물가에 앉아서
고산정은 선조 29년 충청도 관찰사 유근이 지은 정자다. 유근은 이곳에 정자인 만송정과 방 두 칸 짜리 집인 고산정사를 짓고 광해군 때 낙향하여 은거했다. 숙종 2년에 고산정사는 불타 없어지고 만송정만 남았는데 이를 두고 후대에 고산정으로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이 일대를 일컬어 제월대라고 부른다.

제월대 절벽 위에 있는 고산정에 오르면 괴강 물길이 태극 모양을 이루어 휘돌아 나가며, 푸른 들판이 펼쳐졌고 저 멀리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고산정에서 내려와 정자에서 바라봤던 물가로 내려간다. 연세 지긋하신 아저씨가 강물에 삽을 씻고 계신다. 먼저 인사를 건넸더니 주름 깊은 웃음과 함께 인사를 받는다. 나는 물가로 내려가고 아저씨는 자전거에 삽을 걸치고 잘 익은 옥수수가 줄을 맞춰 있는 밭 옆으로 난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제월대는 홍명희가 낚시를 즐겼던 곳이라고 알려졌으니 아마도 이곳 어디쯤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을 것이다. 강가에 가만히 앉아 여름이 깊어가는 여울에서 물소리를 듣는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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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