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땅
구름 위의 땅
  • 나무신문
  • 승인 2013.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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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강릉 안반데기

▲ 안반데기 고랭지채소밭. 이 풍경은 안반데기 전체 면적의 10%도 안된다.
갑자기 떠난 여행
여행은 당일 아침에 결정됐다. 아침도 먹기 전에 걸려온 전화 “오늘 시간 되냐?” 여의도에서 출발, 목적지는 주문진항 경유지는 횡계였다.

일행 중 한 명이 몇 번 가본 횡계의 펜션을 먼저 들렀다. 황태로 유명한 횡계에서 점심으로 먹은 것은 당연히 황태해장국이었다. 뜨거운 국물과 황태의 맛으로 속을 풀고 인근에 있는 펜션으로 향했다.

계곡 깊은 곳이나 산기슭에 있을 줄 알았던 펜션은 횡계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펜션단지에 있었다. 펜션 주인아줌마가 일행을 알아보고 냉커피를 내오신다. 베란다에 앉아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눈을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는 데 선자령 풍력발전단지 풍차가 있는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로 들린 ‘안반데기’는 펜션 주인아줌마가 추천한 여행지였다. 고랭지배추밭이라는 것과 정확하지 않은 길안내가 우리가 들은 정보의 전부였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그곳을 찾아 길 위에서 길을 물어 갔다.

송천 물줄기를 오른쪽에 두고 한적한 길을 달린다. 송천은 정선 땅으로 흘러들어가 아우라지에서 골지천과 만나 조양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조양강은 정선 땅에서 동강이 되고 영월 동강으로 흐르다 서강과 만나서 끝내는 한강이 되는 물줄기다.

그렇게 가다 만난 이정표 ‘안반덕’. 신경 쓰지 않았다면 이정표를 못 볼 수도 있었다. 크지 않은 이정표를 따라 오르막길을 구불구불 기어오른다. 산 하나를 넘는 길 옆 숲 향기가 차안을 가득 메운다. 뜨겁고 찐득했던 산 아래 마을과 다르게 서늘한 기운에 마음도 상쾌해진다. 뱀이 차 앞에서 스르륵 지나간다.

드디어 도착한 안반데기, 그 풍경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산굽이 길을 뚫고 올라온 해발 1100m 구름 위의 땅, 그 광활한 풍경 앞에서 감동한다. 

 

안반데기
풍경에 감동한 우리는 이곳의 역사를 알고 또 한 번 감동하게 됐다. 이 드넓은 고랭지채소밭을 모두 사람 손으로 개간했다는 것이다. 

안반데기는 해발 1100m의 고산지대에 있는 고랭지채소 마을이다. ‘안반데기’라는 이름은 떡메로 떡을 치는 안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었다. 원래는 ‘안반덕’인데 강릉사투리로 하면 ‘안반데기’이다. 또 행정구역상 이름은 ‘대기리’인데 큰 터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큰터’ 또는 ‘한터’라고도 불린다.

안반데기는 고루포기산과 옥녀봉 사이에 있는 ‘고산구릉형’ 지형에 있는 마을이다. 1965년 국유지를 개간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어 감자와 약초 등을 재배해 오다가 1995년 경작자들에게 농지를 불하해 현재는 28개 농가가 거주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채소 산지가 됐다.

언덕과 구릉으로 인해 경사가 심한 곳은 기계로 농사를 짓지 못해 소로 밭을 일구기도 한다.

오로지 화전민들의 손으로 일군 드넓은 구름 위의 땅, 안반데기. 지난한 삶의 역사를 묻어버리지 않고 여행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해서 마을에서 화전민사료전시관, 귀틀집을 복원한 운유촌, 멍에전망대 등을 만들었다.

화전민사료전시관은 잡초와 자갈로 덮인 척박한 땅을 곡괭이 하나로 일구어 지금의 모습을 만든 과정과 화전민들의 삶의 애환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운유촌은 구들장을 깐 온돌식 민박과 음식점이다. 멍에전망대에 오르면 화전민들이 일군 밭이 시원하게 펼쳐진 모습과 강릉시내와 동해가 한 눈에 보인단다.

 

▲ 언덕 밭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 낸 풍경이 인상적이다
주문진항과 사천해변의 밤
주문진항을 들러야 하는 시간 때문에 강릉시내와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멍에전망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안반데기 안내판 안내도를 보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은 안반데기 전체의 10%도 안 되는 규모다. 이 풍경도 좋은 데 멍에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또 어떨까? 고랭지배추의 푸른 물결이 한창일 때 다시 오기로 하고 강릉방향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주문진항은 우리에게 일상 탈출의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어떤 누구는 차를 달려 일출을 보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곳이기도 했으며, 오늘처럼 그곳이 보고 싶을 때 이유 없이 떠나는 곳이기도 하다.

저녁 항구는 한산했다. 새벽항구를 기약하며 발길을 향한 곳은 사천해변 민박집이다. 당일 여행을 제외하고 주문진항을 찾는 날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사천해변 그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오늘도 애초에 계획은 당일 여행이었지만 주문진 새벽항구의 모습과 파도소리가 밤새 창을 넘는 ‘바닷가의 하룻밤’을 두고 그냥 떠날 수 없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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