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 대목장 가문 ‘양식뢰’와 공관제도
청대 대목장 가문 ‘양식뢰’와 공관제도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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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木匠의 세계 26

 

▲ 자금성 수방재 탕양 紫禁城 漱芳齋 湯樣, a building model(tangyang) in Shufang-zhai at Zijing-cheng(the Forbidden City in Beijing), 2012년, 60×60×11, 이영혁

중국 청대의 황실건축의 경우 설계를 주관한 양식뢰 가문의 설계도면과 모형 등이 남아있어 대목장의 역사와 기술이 잘 전해지고 있다. 이번호에는 양식뢰 가문에 대해 살펴본다.

 

공관제도
청나라의 황실건축 예컨대 도성, 궁궐과 원림, 제단과 묘당, 능침, 관아 등은 줄곧 전문기구 “양식방樣式房”의 전임 장인인 “양자장樣子匠”에 의해 설계됐다. 강희(康熙, 1661 ~ 1722)시대 이후부터 뢰씨雷氏 가문이 8대를 걸쳐 황실건축의 설계를 담당했고, 또한 양식방 업무를 장기적으로 장관하면서 세인으로부터 “양식뢰樣式雷”라는 명성을 누리게 됐다.

양식뢰 가문의 직업 측면의 활동과 후세에 전해진 도면기록은 청나라 건축공정 관리체제 즉 공관工官 제도의 산물이다. 강희시대부터 영조營造의 상업화 발전에 따라 관식官式 건축은 점차 표준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됐고 대목작大木作은 고도의 모듈화 체계를 형성했으며 고공雇工 제도는 과거의 장역匠役 제도를 대체하게 됐다. 옹정(雍正, 1722 ~ 1735)시대에는 공부工部의 「공정주법칙례工程做法則例」를 반포해 공정에 사용되는 재료의 취급방법을 규범화시켜 경제적인 계산에 유리하도록 했다. 황실건축도 역시 공관이 감독하고 도급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고도의 세밀한 관리체계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도면기록의 수량과 종류도 방대하고 다양하게 됐는데, 예컨대 설계도면인 화양畵樣과 건축모형인 탕양燙樣, 그리고 설계 설명서인 「공정주법工程做法」과 「소산황책銷算黃冊」, 「공정비요工程備要」 등이 있다.

제도에 의하면 국가의 건축공정에서 품값이 은화 50냥, 재료값이 은화 200냥을 넘는 경우는 반드시 공부에 상신하고 황제에  주하여 승수대신承修大臣을 파견 받아 공정처工程處를 편성해 공정의 계획설계와 시공을 담당해야 한다. 이와 함께 황제가 파견한 감고대신勘估大臣은 감고처勘估處를 편성해 공정의 지출에 대해 회계감사를 진행하는데 상주해 인준을 받으면 공정처와 상의한 후 예산에 따라 비용을 수령하고 도급자를 유치해 공사를 진행했다. 준공 후의 검수 역시 감고처에서 담당하고 검수된 후  정처에서 「소산황책」을 작성하고 상주해 결산한다.

공정처는 흠공처欽工處라고도 하는데 전문적인 사무기구를 설치하고 있어 이를 당방檔房이라 한다. 북경성 내에 있는 것은 경당방京檔房이라 하고 공사장에 있는 것은 공차당방工次檔房이라 하는데 그 아래에 양식방과 산방算房을 두고 양자장과 산수算手를 파견했다. 그 중 산수는 공정에 사용되는 재료의 채산업무를 담당하고 양자장은 건축설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산방의 산수와 함께 「공정주법」을 편저했다. 양식방 책임자는 장안掌案이라 하는데 강희시대 이후부터 주로 뢰씨 가문 출신이 담당하게 됐다.

 

양식뢰 건축가문
중국의 황실건축, 옥천산玉泉山 정명원静明園, 향산香山 정의원静宜園, 남원南苑, 공왕부恭王府, 심양瀋陽 고궁故宮과 영릉永陵, 복릉福陵, 소릉昭陵, 천진 계현薊縣의 정기산장静寄山莊 및 각지의 행궁行宮 등은 청대 ‘양식뢰樣式雷’라는 명성을 누렸던 건축 세가의 작품이다. 이 건축들은 8대, 200여년에 걸쳐 뢰씨雷氏 가족이 청대 황가건축의 설계 업무를 주관하여 이루어낸 결과이다.

뢰발달은 뢰씨 세가가 시작되는 시조로서, 강희 22년(1683) 처음 북경에서 황실건축에 참여하였다. 뢰발달의 장자 뢰금옥은 부친과 함께 황가 궁원 건설에 참여하여 재능을 인정받아 청대 첫 번째 황가 원림인 창춘원暢春園을 건설한다. 뢰금옥이 자금성 태화전 상량시 기지를 발휘한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있다.

 

자금성 수방재(漱芳齋) 탕양
청대 황실건축체계를 살펴보면 공관이 건축감독을 맡고 도급자를 유치하는 방식이다. 도급자에 대한 세밀한 관리체계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건축 설계안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초보설계에서 얻은 방안을 도면으로 그려 어람하도록 올리면 여러 번의 수정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도면은 아름다운 화양畵樣으로 그리고 동시에 상세한 설명을 첨부한다. 그 후 다시 어람하도록 올려 확정되면 일정비례의 건축모형인 탕양燙樣을 제작한다. 탕양에 대한 황제의 윤허 후 비로소 공정예산을 수립하고 상세한 건축설계를 진행한다.

위 사진으로 보는 탕양은 2012년 자금성 수리기술센터 주임으로 재직 중인 이영혁이 제작한 자금성 수방재의 1/100 축소 모형이다. 수방재 탕양은 양식뢰의 모형 제작 방법과 재료를 그대로 이용하여 재현한 것으로 중정 부분에 원래 있던 희대戱臺를 생략하고 중정의 크기를 약간 축소하여 만들었다. 수방재는 원래 명대 1420년(영락 18)에 지어진 서 5소所의 하나로 건륭제가 즉위한 이후 서 2소를 중화궁으로 하고 그 동쪽편에 있는 서 1소를 수방재로 한 다음 희대를 지어 중화궁의 연회 장소로 사용했다. 공자형工字形 평면으로 중요한 명절과 경축일에는 이곳에서 각종 연회를 베풀었으며 공연을 감상했다. 현재는 고궁박물원의 귀빈 접대실로 이용되며 미공개 지역이다.
자료제공 _ 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