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기 좋은 백범 명상길
솔향기 좋은 백범 명상길
  • 나무신문
  • 승인 201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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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충남 공주 마곡사

▲ 마곡사 천왕문
태화산(416m)은 높지는 않으나 깊다. 산과 물이 어울린 형국이 태극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정감록은 이곳을 전란과 재해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 중 한 곳으로 꼽고 있다. 이런 태화산이 품고 있는 산이 마곡사다.

 

1300여 년 전 절 마곡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에 있는 마곡사는 640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절을 다 짓고 낙성식을 할 때 자장율사의 법문을 듣고자 모인 군중들이 삼대(麻)와 같이 많았다고 해서 이름을 마곡사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마곡사는 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까지 폐사 되었다. 그러던 중 고려 명종 때에 보조국사 지눌이 왕의 명으로 절을 중창했다.

당시에 절 규모가 현재 절 규모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됐었다고 전한다. 중흥기를 맞은 마곡사를 또 다시 폐사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임진왜란 절 전체가 불타 사라졌다. 그렇게 방치 된 세월이 60여 년, 1651년에 대웅전 등을 다시 중수하면서 절은 다시 번창하게 된다.    

마곡사 영산전이 보물 제800호, 대웅보전이 보물 제801호, 대광보전이 보물 제802호다. 오래된 절집 중에 작고 아담한 건물이 눈에 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곳이다. 명성황후 시해에 관련 있는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백범 선생은 마곡사에 은거하며 1898년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 했다. 당시 백범 선생이 머물렀던 건물 옆에는 선생이 직접 심은 향나무가 지금도 남아 있다.

 

▲ 백범 명상길은 마곡사를 안고 있는 태화산 솔숲길이다
백범 명상길
백범 선생이 머물렀던 당시 마곡사 풍경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백범 선생 역시 마곡사를 품고 있는 태화산 산책로를 거닐었을 것이다.

지금 그곳에는 ‘백범 명상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길은 백범 선생이 머물렀던 집 옆으로 흐르는 냇물부터 시작한다.

백범 선생이 머물렀던 절집 옆으로 나가면 냇물이 나온다. 냇물을 왼쪽에 두고 걷는다. 조금만 가다보면 바위 앞에 데크가 있고 거기에 안내판 하나가 나온다. 이곳은 백범 선생이 삭발했던 곳이다.

냇물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흐르고 냇가에 붉은 진달래가 피었다. 다리를 건너 이정표가 이끄는 대로 산으로 접어든다.

초반 오르막에 숨이 찬다. 오르막 구간은 짧다. 그 가운데 명상길 초입 쉼터가 나오는데 그곳에 이런 문구가 있다.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이 글은 백범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와 관련된 일본군 장교를 죽이기 전에 스스로에게 다짐을 할 때 곱씹은 말이라고 한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서면 능선길이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솔숲을 흔드는 바람이 시원하다. 바람 소리와 함께 솔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솔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길에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었다.

솔숲과 진달래가 어울린 길 중간에서 멈추어 선다. 그냥 그대로 그 길을 즐기는 거다.
마곡사부터 약 2.8km 쯤 거리에 군왕대가 나온다. 태화산에서 지기가 가장 강한 곳이다. 군왕이 나올 만 한 기운이 있다고 해서 군왕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군왕대를 지나면 내리막길이다. 숲길에서 내려서면 영산전이 나온다.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러 이곳까지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는데 당시에 세조가 ‘영산전’ 현판 글씨를 썼다고 전해진다.

 

돌아가는 길에 본 법구경 글귀
다시 절 마당으로 들어선다. 마곡사는 보물이 많다. 오층석탑은 보물 제799호, 석가모니괘불탱화는 보물 제1260호다. 마곡사 은입사향로와 동종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다.
보물 구경을 하고 나서는 데 관광해설사가 대광보전 마루에 깔린 삿자리를 보여준다. 삿자리란 참나무로 짠 돗자리 같은 것인데 여기에는 불구를 낫게 한 비로자나불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절을 뒤로하고 돌아나가는 길 한쪽에 돌비석이 서있다. 글씨가 새겨있어서 자세히 보니 법구경 문구다. ‘사랑으로써 분노를 이기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라. 베품으로써 인색함을 이기고 진실로써 거짓을 이겨라’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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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