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목장, 오가와 미츠오
일본 대목장, 오가와 미츠오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05.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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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木匠의 세계 22

 

오가와 미츠오는 니시오카 츠네카츠西岡常一의 뒤를 이은 유일한 제자이다. 니시오카 츠네카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인 법륭사法隆寺의 궁목수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목조건축분야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오가와 미츠오는 두 번째로 지정된 마츠우라 쇼우지의 뒤를 이어 세 번째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유력한 궁목수이다. 스물두 살의 늦은 나이에 니시오카의 제자가 된 오가와 미츠오는 20년이 걸린다는 궁목수宮大工의 기술을 5년이 채 안되어 습득하고, 나라현奈良睍의 법륜사삼중탑法輪寺三重塔 재건공사를 비롯해 약사사藥師寺 금당 및 서탑 재건공사에 참여했다. 1977년 궁목수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을 육성하기 위해 이카루카공사角鳥工舍를 설립해 현재 후진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법륭사 동량(棟梁)의 계보, 동량은 대목장
일본에서 ‘궁목수’ 란 궁궐이나 사찰 등의 건축을 담당한 목수를 의미하며, 동량棟梁은 목수의 우두머리로 공사를 총지휘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곧 동량은 대목장과 유사한 의미이다. 법륭사는 쇼토쿠태자가 601년에서 607년 사이에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이다.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제작한 목조 백제관음상과 고구려의 담징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금당 내부의 벽화는 법륭사의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쇼토쿠태자가 사천왕사를 완성한 후 세 명의 백제인 목수를 보내 법륭사를 짓도록 명했다는 구전口傳이 있다.

니시오카의 구술에 따르면 니시오카의 집안이 법륭사 동량을 맡은 것은 니시오카의 할아버지 니시오카 츠네키치西岡常吉 때부터이다. 에도시대까지 법륭사의 동량은 나카이 야마토노카미中井大和守의 지배하에 있었고, 메이지시대에는 오카지마岡島, 하세가와長谷川와 같은 집안에서 동량을 맡아 왔다. 니시오카 집안은 대대로 법륭사 사찰의 장인 마을에서 살았던 일반 목수가문이었다.

메이지시대에 들어 서양의 도시건축이 증가하고 자본주의 경제관념이 높아지자 궁목수는 청부업 산하로 재편입됐고, 법륭사 사찰에 속해있던 장인들도 대부분 떠나고 만다. 격동의 순간에도 니시오카 집안은 긍지를 가지고 전통기술을 이어나가고 있어, 1884년 니시오카의 할아버지 니시오카 츠네키츠가 법륭사 동량을 맡게 됐다. 니시오카의 아버지 니시오카 나라미츠西岡楢光가 2대 동량을 이어받고, 니시오카 츠네카츠가 3대 동량이다. 니시오카 츠네카츠를 마지막으로 법륭사의 동량은 끝났지만, 니시오카는 오가와 미츠오를 제자로 받아들여 궁목수의 기술을 전수했다. 오가와 미츠오는 스승 니시오카를 이어 법륭사의 수리가 필요하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오가와 미츠오에게 법륭사는 목수의 길을 찾는 지도이자 교과서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처음 법륭사 오중탑을 보고 궁목수가 되겠다고 결심해 니시오카 스승을 찾아가게 됐고, 법륭사 건축기법을 통해 지금도 모르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스승인 니시오카에게도 법륭사는 곧 교과서였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동량교육을 받았던 니시오카는 법륭사 경내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목조건축의 구조를 습득했고, 모르는 것은 법륭사 경내에서 답을 찾곤 했다. 법륭사 궁목수의 정신은 니시오카를 통해 오가와 미츠오에게 여전히 살아있다.

 

스승, 니시오카 츠네카츠
1964년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에서 오가와 미츠오는 법륭사를 처음 보았다. 1300년 전에 세워진 법륭사를 보는 순간 어떻게 이런 거대한 나무를 옮겨온 것일까, 최상부에 있는 상륜은 어떻게 올릴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살의 젊은이는 무작정 법륭사의 동량 니시오카 츠네카츠를 찾아간다. 하지만 궁대공의 제자가 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았고, 당시 법륭사에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니시오카는 제자입문을 거절한다. 다만 목수가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끌과 대패 정도는 다룰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을 쌓고 오라고 조언해 주며 추천편지를 써준다.

니시오카의 추천에 의해 나가노長野현의 불단 제작 회사에서 1년, 시마네島根현에 있던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건조물 보수 현장에서 1년반, 그리고 그 쪽에서 소개해 준 효고兵庫현 보수 현장으로 옮겨서 3개월을 보낼 즈음, 니시오카西岡 동량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제부터 법륜사의 삼중탑 건축공사가 시작된다. 제자로 와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1969년 4월 오가와 미츠오는 니시오카 동량의 집에 이불 한 채를 짊어지고 들어갔다. 당시 니시오카 동량 집에는 니시오카 나라미츠 부부, 니시오카 동량 부부, 동량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살고 있었다. 니시오카 동량의 집에 들어간 며칠 후 스승은 제자입문 의식을 치러 준다. 니시오카 나라미츠의 입회하에 니시오카와 오가와 미츠오는 큰 냄비를 앞에 두고 앉아 열심히 일할 것을 다짐했다. 니시오카에게도 첫 제자가 생기는 의식이었다. 의식을 치른 뒤, 니시오카 동량은 ‘오가와 미츠오는 내 뒤를 이을 사람이다. 이제부터 내 다음의 위치는 오가와이다’라고 가족들에게 선언했고, 가족들은 집안의 서열 2인자로 오가와 미츠오를 극진히 대했다. 어려웠던 견습생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니시오카 동량과 주고받은 편지였다. 니시오카 스승은 제자가 되겠다고 갑자기 찾아온 한 젊은이에게 목수 직업의 세계를 알려주고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첫 동량이 되다, 법륜사 삼중탑
법륜사(法輪寺, 호린지)는 쇼토쿠태자의 아들이 부친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면서 622년에 세운 절이다. 법륜사 삼중탑은 법륭사 오중탑, 법기사 삼중탑과 더불어 아스카시대를 대표하는 탑이었으나 1944년 낙뢰로 인해 소실되고 만다. 1975년 전통공법을 이용해 아스카시대의 양식으로 재건됐는데 당시 오가와 미츠오가 니시오카 츠네카츠를 대신해 동량을 맡았다. 1969년 니시오카 동량의 제자가 된 다음날부터 오가와 미츠오는 법륜사 작업장으로 출근했다. 법륜사 작업장에 목수는 단 둘이었다. 니시오카 동량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을 했고, 그 옆에서 오가와 미츠오는 지켜보며 일을 배웠다. 법륜사 복원 현장이 곧 오가와 미츠오의 실습실이었던 것이다. 집과 법륜사 현장을 오가며 건물의 구조와 의미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황금 같은 시간이었으나 법륜사의 자금이 없어 일이 잠시 중단됐다.

 

1973년 법륜사 삼중탑 재건공사가 시작됐다. 당시 니시오카 동량은 약사사 금당 복원작업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가와 미츠오에게 자신을 대신해 동량을 맡을 것을 지시한다. 니시오카의 제자가 된 지 5년째 접어들었고 불과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였다. 당시 법륜사 삼중탑 재건공사는 키요미즈 건설에서 맡고 있었다. 키요미즈 건설에서 제공한 설계도면에는 삼중탑 재건에 철재를 사용하도록 돼 있었다. 오가와 미츠오는 법륜사와 상의해 최소한의 철재를 사용했으나, 니시오카 스승은 철재 부분은 허물고 목재로만 다시 지을 것을 명령했다. 스승에게 배운 철저한 장인정신은 훗날 오가와 미츠오가 타협하지 않고 사찰공사에 임하는 계기가 된다. 오가와 미츠오는 법륜사 삼중탑 재건공사의 단락마다 기록사진을 남겨두었다. 거대한 목조건축물이 조립되어 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자료제공 _ 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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