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보골 식물원
인도네시아 보골 식물원
  • 나무신문
  • 승인 2013.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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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 53
보골 식물원안에 있는 레드 메란티 수목의 밑둥지 부분
보골 식물원안에 있는 레드 메란티 수목의 밑둥지 부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60km에 위치하고 있는 보골(Bogol) 시(市)의 중심에는 인도네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보골 식물원이 있다. 이 식물원은 네덜란드 식민지 통치시대인 1817년 5월18일, 레인와르트(Caspar G. Reinwardt)박사에 의해 개원(開院)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원래 이곳 이름을 네덜란드식으로 부이텐조르그(Buitenzorg)라고 불렀으나 후일 보골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식물원의 면적은 87ha(약 30만평)로서 2001년 3월까지 식물 212과(科) 1242속(屬), 15000여 종(種)이 보존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 야자나무 400여종, 3천종이 넘는 난(蘭)도 포함되어있다. 이외에 아직 분류되지 못한 1830종이 분류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곳에 있는 수많은 열대 식물 종들 가운데 절반이 수목(樹木)이며 나머지는 관목, 초목, 꽃(난 포함) 등이다. 오늘날 동남아시아(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와 남태평양(파푸아뉴기니, 솔로몬 군도)에서는 오일팜(Oil Palm) 산업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바, 이것의 시작은 바로 보골 식물원이다. 1848년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져 온 오일팜 씨앗과 묘목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보골 식물원에 식재되어 후일 동남아시아 전역과 대양주까지 확산된 것이다. 현재 보골 식물원은 인도네시아 과학원(Institute of Science)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저자는 Tiliaceae(피나무과)와 Theaceae (차나무과)에 속한 열대 수목들을 찾아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였는데 저자가 찾고 있던 이 두 가지 과(科)에 속한 나무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식물원 사무실에는 각 식물 수종의 식재된 위치도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원하는 수종을 찾아볼 수 있었다(이 점은 전세계 어느 식물원보다도 잘 되어있다). 인도네시아 국민이라면, 이렇게 세계적인 식물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여도 좋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제국(諸國)들의 대표적인 수목인 이우시과(二羽枾科)의 각종 수목들이 아름드리 크기로 식물원 곳곳에 서있다. 이 수종들은 싱가폴이나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의 식물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보골 식물원의 크기가 워낙 크고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남양재의 지식이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300여년에 걸쳐서 포루투갈, 스페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5개국이 동부인도네시아 바다에서부터 인도양에 걸쳐서 벌인 향료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누트멕(Nutmeg,肉豆寇; Myristicace Myristica spp)과 클로브(Clove,丁香; Myrtaceae Syzygium aromaticum)의 수목도 발견하였다. 필자를 안내해 준 안내원(임학자)은 필자가 누트멕 수목과 열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서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인부를 불러서 열매를 따오도록 하였다. 그때 얻은 누트멕 열매는 아직도 필자의 집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식물원 정문을 들어가서 중앙도로를 따라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조그만 정자(亭子)같은 건물이 숲 속에 보인다. 흰색으로 된 이 건물(Tugu Lady Raffles; Lady Raffles Memorial) 속에는 기념비도 보인다. 이것은 후일 싱가폴을 영국 영토로 만든 영국인 레플즈(Thomas Stamford Raffles) 부총독이 부인을 위해 세운 것이다. 그 당시 영국군은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프랑스 연합군을 격파하고 자바섬을 점령하였으므로 이 전투에 간접적으로 참여하였던 레플즈는 1811부터 1816년까지 자바섬의 부총독을 지냈다(당시 총독이 없었으므로 부총독이 실제 총독 역할을 하였음). 그때 부인 올리비아(Olivia Mariamne)가 말라리아에 걸려 6개월간 고생하다가 43살의 나이로 이곳에서 사망하였다(1814년 11월26일). 부인의 유해는 자카르타의 타나아방(Tanah Abang)에 있는 유럽인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생전에 보골의 경치와 기후를 좋아하였던 부인을 위해 레플즈는 보골에 기념비를 세우고 지붕이 있는 건물을 세워놓았다. 1970년 1월4일, 자바섬에 몰아 닥친 강한 태풍은 그 건물을 부수었으나 건물은 그 해 8월17일 재건되었다. 건물 안에 있는 기념비에는 고(古)영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OH THOU Whom neer my constant heart one moment hath Forget Tho' fate
severe hath bid us part yet still- Forget me not

 

필자는 이를 번역해 보려고 애를 썼으나 필자의 실력으로는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단 수첩에 기록한 내용을 영국인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현대 영어로 쉽게 해석을 해보라고 하였으나 이 영국인들 조차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든다. 그래서 필자가 알고 있는 분으로서 주옥 같은 영시(英詩)를 정기적으로 번역하여 지인들에게 보내는 정철 선생(경기고 55회, 서울대 법대졸업)에게 의뢰하였다. 필자의 부탁을 이메일로 받은 정철 선생은 즉시, 그 다음날 기념비의 고전 영어를 현대 영어로 쉽게 풀이한 것과 이를 현대적인 해석과 고전적인 해석으로 번역하여 (2008년 6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보내왔다.

 

* 평문 영어
Oh, You, when my constant heart had never forgot one moment,
have not yet still forgot me, even though severe fate has bid us part.

*해석 A (현대적 해석)
아, 나의 변함없는 마음이
한 순간도 잊어 본 적이 없는 그대는,
비록 가혹한 운명이 우리를 갈라지도록 하였어도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네

*해석 B (고전적 해석)
이 몸의 일편단심이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님은
가혹한 운명으로 헤어졌네만 아직도 이 몸을 못 잊으시네

 

과연 정철 선생이었다. 덕분에 필자가 궁금히 여기던 영시의 해석이 풀렸다.
관광객은 보골 식물원을 둘러보는데 한 두 시간이면 되지만 식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며칠은 둘러보아야 이 식물원이 갖고 있는 보물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식물원 안에는 실비를 받는 손님숙소(방 20여개)가 있고 연구실과 묘목장도 있다. 필자는 언젠가 회사 일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면 배낭을 메고 보골 식물원을 다시 찾아가서 이 숙소에서 1주일 이상 머물면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열대의 각종 수목과, 이러한 자연을 선물로 주신 창조주의 솜씨를 찬찬히 음미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53회에 걸쳐 나무신문에 연재한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는 어느 덧 이번 회가 마지막으로 되었다. 부족한 내용이지만 그 동안 본 연재 기사를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또한 1979년부터 오늘까지 34년에 걸쳐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곳곳에 있는 식물원을 방문하여 창조주의 솜씨 가운데 일부분을 이생의 현실에서 맛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필자가 좋아하는 찬송가의 한 구절로 연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 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권주혁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