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上, 22직종의 화성축성 장인
수원화성 上, 22직종의 화성축성 장인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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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木匠의 세계 15

 

수원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04년에는 미국토목학회로부터 ‘역사적 토목 구조물(Historical Civil Engineering Landmark)’로 지정받음으로써 문화적 기술적 우수성과 함께 공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국토목학회는 선정사유로 화성축성에 참여한 장인들에 대한 임금제도, 설계에서부터 축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의 우수성을 꼽았다. 미국토목학회가 꼽은 과학적인 임금제도는 정조시대의 산물이다.

일당을 기준으로 직종별 차등지급하는 임금제도는 1789년 문희묘공사에서 시작해 화성성역에서 더욱 체계화 됐다. 정조는 땀 흘려 일하는 장인들과 일꾼이 화성축성의 주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정한 임금지급과 함께 장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각종 행사를 개최했다. 전통 건축의 맥이 장인을 통해 이어짐을 정조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Hwaseong seongyeok-uigwe, 1801년(순조 1), 36.8×22.8, 영인본, 수원화성박물관

화성華城은 1794년(정조 18) 1월부터 1796년(정조 20) 9월까지 총 2년 9개월에 걸쳐 축성築城된 수원의 읍성邑城이다. 화성은 축성 이후 모두 세 차례의 대규모 수리공사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1846년(헌종 12) 폭우로 인해 화홍문, 남수문, 매향교가 무너지고 방화수류정, 팔달문 등의 건물이 피해를 당해 1848년(헌종 14) 시행된 수리 복원공사이다. 두 번째는 일본총독부에 의해서 장안문長安門을 비롯한 화성의 주요 건축물 수리가 진행됐던 1930년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화성에 대한 수리 복원 공사가 있었던 1975년에서 1978년이다.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Hwaseong seongyeok-uigwe, 1801년(순조 1), 36.8×22.8, 영인본, 수원화성박물관

 

22직종의 화성축성 장인화성의 축성 공사에는 모두 22종 1840명에 이르는 당대當代 최고의 전문 기술자들이 동원됐다. 축성공사에 참여한 장인 가운데 약 60% 정도는 한양漢陽에 거주했던 인물들이었으며 나머지 40%는 수원부水原府와 개성부開城府 등 기호지방畿湖地方에 살았던 장인들이었다. 한양에 거주했던 장인들의 약 1/3은 관청에 소속된 관장官匠으로 선공감繕工監 및 내수사內需司 등 공조工曹에 속한 인력과 훈련도감訓練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등 군영軍營에 소속된 인력이 각각 반半을 차지했다. 그러나 화성성역 이후 공조나 군영 등 관청에 소속된 장인들이 성역城役에 동원되는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자료제공 _ 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

 

 

▲ 화성 축성에 함께한 22직종의 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