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木匠의 세계 9]조선시대 문헌 속 대목장 2
[大木匠의 세계 9]조선시대 문헌 속 대목장 2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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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상량 묵서(崇禮門 上樑 墨書)
전통건축의 해체 수리시 발견되는 수많은 묵서를 통해 목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묵서墨書란 글자 그대로 목재에 먹물로 쓴 글씨를 말한다. 건물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묵서는 대개 하급 기술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거나 조립하는데 편리하도록 부재에 기호를 적는 형태가 있으며 상량문을 길게 적는 경우도 있다. 단편적인 기록이지만 간혹 귀중한 단서를 묵서에서 얻기도 한다. 서울 숭례문의 경우에는 1962년대에 해체 수리하면서 장인들의 호칭과 관직이 명시된 상량기록이 발견됐다. 이 기록에 의하면 숭례문은 1396년(태조 5)에 창건된 후, 1448년(세종 30)과 1479년(성종 10) 두 번에 걸쳐 중수됐다.

1396년 숭례문 창건 당시 목수의 우두머리는 대목大木이라고 불렸던 법륜사 승려 각희이다. 1448년 수리공사에 참여한 목수의 우두머리 역시 대목大木으로, 사직司直이라는 벼슬에 있었던 최건이라는 장인이었다. 사직은 종5품의 무관 관직이었다. 1479년 숭례문 수리에는 대목을 맡은 장인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이라는 종3품 무관 품계를 지닌 사람이었다.

숭례문 상량기록 3건을 통해서 볼 때, 조선 초기 관청공사에서 뛰어난 공을 세운 장인들에게는 관직에 오를 기회가 주어져서 최고 종3품 이하의 무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조선 초기 장인의 위상을 보여주는 이 상량문 묵서는 아쉽게도 2008년 숭례문 화재로 사라져버렸다. 1962년 해체수리 당시 남긴 사진 일부와 조사보고서에 실린 내용이 남아 있을 뿐이다.

 

▲ 창경궁수리소의궤 昌慶宮修理所儀軌, Changgyeong-gung suliso uigwe, The Record about the repair work of Changgyeong-gung, 1633년(인조 11), 44.5×34.7,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창경궁수리소의궤(昌慶宮修理所儀軌)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창경궁의 내전이 소실돼 1633년(인조 11) 3월부터 7월까지 다시 수리 공사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현존하는 건축 관련 의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17세기초 건축사 연구의 중요 자료이다. 1633년 8월 수리소에서 편찬했으며 해숭위海嵩尉 윤신지尹新之 등이 담당했다. 어람용 1건과 분상용 4건을 제작했으나 현재는 규장각에 4건만 남아 있다.

내용은 좌목座目, 계사啓辭, 관문關文, 의궤사목儀軌事目, 상전賞典, 각처철이질各處撤移秩, 축삭료포정식逐朔料布定式, 일수운순수日輸運巡數, 미포겸잡물소米布兼雜物所, 재목소材木所, 일소一所, 이소二所, 삼소三所, 사소四所, 오소五所, 노야소爐冶所 등의 순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축삭료포정식’의 내용 중에 목수木手나 석수石手를 포함한 장인匠人과 모군募軍에게 한 달에 쌀 10두와 포 2필을 동일하게 지급한 급료 규정이 나와 있어 주목된다. 또한 일소一所부터 오소五所까지 참여한 목수木手의 명단이 각 소별로 자세히 기록돼 있어 당시 건축에 참여한 목수들의 정보도 살펴볼 수 있다.

 

▲ 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 Hwaseong seongyeok-uigwe, which includes the process of fortress constructions and the drawings of buildings elaborately, 1801년(순조 1), 36.8×22.8, 영인본, 수원화성박물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1794년(정조 18) 1월부터 1796년(정조 20) 9월까지 진행된 화성의 축조築造 과정을 기록해 1801년 9월에 10권 9책으로 간행했다. 조선시대 영건의궤 가운데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성역 공사를 기록한 유일한 의궤이기도 하다. 현재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본은 1996년 사운 이종학이 규장각 소장본을 영인해 배포한 것이다.

내용은 먼저 범례를 소개한 후 권수卷首, 권卷 1~6, 부편附編 1~3의 순으로 구성했다. 권수卷首에는 도설 105면이 실려 있어 공사 개요 및 완성된 건축물이나 투입된 건축 부재 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권2의 호궤에는 총 11회에 걸쳐 목수木手 등 성역 참여자에게 내린 음식에 대해 기록했다. 권4의 공장工匠에는 동원된 목수의 명단이 서울, 수원부水原府, 광주부廣州府,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강원도江原道, 황해도黃海道 등의 지역별로 크게 나뉘어 수록됐는데 모두 335명이다. 목수의 이름 옆에는 성역한 일수와 작업 장소 등을 자세히 부기하여 다른 의궤보다도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예컨대 서울에서 온 정복룡丁福龍은 730일 일했으며 근무지는 구포 치목소를 비롯해 팔달문, 복내당, 낙남헌, 노래당, 경룡관, 북동 포루, 북서 포루, 북포루, 향교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거중기擧重機와 설마雪馬 등 각종 기계의 도면과 해설을 싣고 있어 당대의 운반수단과 도구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성역에 소요된 물품의 수량과 단가, 장인들에게 지급한 급료까지 하나하나 기록해 당시 경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각종 건축 용어들이 이두로 표기돼 국어사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 중화전영건도감의궤 中和殿營建都監儀軌, Junghwa-jeon yeonggeon dogam-uigwe, The Record of Construction about Junghwa-jeon, 1907년(융희 1), 44.8×31.8,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중화전영건도감의궤(中和殿營建都監儀軌)
1901년(광무 5) 7월부터 1902년(광무 6) 11월까지 경운궁慶運宮 중화전中和殿의 영건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경운궁은 뒤의 덕수궁德壽宮이다. 1903년 10월 1일 고종이 성기운成岐運을 의궤당상에 임명하고 편찬하도록 지시해 1904년 2월 일단 완성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때마침 경운궁의 대화재로 인해 중화전이 소실됐다가 1906년 12월 다시 중건되자 1907년 2월15일 성기운이 고종에게 의궤의 수정修整 편찬을 상주上奏하여 허락받고 마침내 8월6일에 완료했다. 1904년의 화재로 소실돼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중화전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의궤로 평가된다. 의궤의 수량은 불분권 1책에 179장이고 표제는 ‘중화전영건도감의궤中和殿營建都監儀軌 전全’이다. 표제 우측에 ‘광무팔년光武八年 갑진甲辰(1904) 이월二月 일日 태백산상太白山上’이라고 부기돼 있어 1904년 2월 태백산사고에서 보관하던 것임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돼 있으며 청구기호는 ‘奎14345’이다.

내용은 좌목座目, 시일時日, 조칙詔勅, 도설圖說, 상량문上樑文, 의주儀註, 반조문頒詔文, 재용財用, 조회照會, 훈령訓令, 내조來照, 내첩來牒, 보고報告, 감결甘結, 상전賞典, 품목稟目, 실입實入, 공장工匠 등의 순으로 구성돼 있다. ‘도설’에는 중화전中和殿, 당가唐家, 오봉병五峰屛 등의 도면이 총 6장 실려있는데 이중에서 원래 중화전이 중층重層으로 세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화전 도면이 가장 주목된다. 중화전은 1904년 소실됐다가 1906년 다시 중건될 때에 단층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또한 공사를 마친 후 영건 공사에 참여한 인원들에게 포상한 내용을 기록한 ‘상전賞典’의 목수 항목에는 도편수都邊首 한수준韓壽俊, 부편수副邊首 홍순모洪淳謨, 편수邊首 박계홍朴啓弘 등 구한말 중요 목수의 명단이 나온다. 그리고 영건 역사에 동원된 공장들의 명단인 ‘공장工匠’의 목수 항목에도 57명의 목수 이름이 전부 기록돼 있다.
 자료제공_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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