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木匠의 세계 ①]신화와 문헌 속 대목장
[大木匠의 세계 ①]신화와 문헌 속 대목장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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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대목장’이라는 용어는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의 도입 이후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국가와 시기에 따라 대목장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르지만, 목조건축의 책임자로 대목장을 인식하는 양상은 동일하다. 태초 인류의 탄생과 건축의 기원을 설명하는 건축신화 속에서 대목장은 문화의 창시자이며 전파자로 등장하고 있다.

 

 

▲ 기와이기 瓦圖(즙와도) 김홍도 조선후기 27×22.7 국립중앙박물관 ① 장척을 들고 있는 대목장 ② 먹통으로 다림보기를 하고 있는 목수 ③ 모탕 위에서 대패질을 하고 있는 목수 ④ 기와를 받고 있는 와공 ⑤ 기와를 던지고 있는 와공 ⑥ 흙 반죽을 묶는 와공 ⑦ 흙 반죽을 끌어올리는 와공 ⑧ 자귀, 곡자, 탕개톱

 

단원풍속화첩, 생생한 대목장의 모습단원풍속화첩(檀園風俗畵帖)에 수록된 위 <그림>은 기와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둥글둥글하게 뭉쳐서 지붕 위로 던져 올린 홍두깨흙을 깔고 기와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주요한 내용이지만, 이와 함께 장척을 들고 있는 대목장, 대패질을 하는 목수, 먹통으로 다림보기를 하는 목수 등 다양한 건축 장인의 모습과 각종 연장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계곡집谿谷集, “제가 없으면 집을 짓지 못합니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文章家의 한 사람인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 谿谷集’(1643년 간행)에는 대목장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계곡집’에 인용된 유자후의 재인전을 보면, 설계도면을 통해 건축을 총지휘하는 감독관으로서 대목장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배봉숙의 집은 광덕리에 있었는데 어느 날 목수 한 사람이 그 집에 찾아 와 품삯으로 빈 방을 빌려 거처하기를 청하였다. 그의 일은 짧은 자와 긴 자, 그림쇠와 곡척曲尺, 먹줄과 먹통을 갖고 하는 것이었으며 그에게는 갈고 쪼개고 하는 공구가 없었다.

무얼 잘하느냐고 묻자 그는 말하기를 “저는 목재를 잘 헤아립니다. 저는 집의 규격만 보면 높고 낮거나 둥글고 네모나거나 길고 짧은 적당한 나무들을 골라내어 공인工人들로 하여금 작업하도록 시킵니다. 제가 없으면 공인들은 한 채의 집도 짓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관가官家에서 일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세배 되는 공임工賃을 받고 사가私家에서는 반을 더 받습니다.”

며칠 후 그 목수의 방에 가 보았더니 침대의 다리가 망가져 있었는데도 그는 고칠 줄을 몰랐다. 그는 “다른 목수를 불러다 고치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심히 비웃으며 공임과 돈만 탐내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 경조윤京兆尹이 관청을 수리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난 적이 있었다. 수많은 목재가 쌓여 있었고 공인들이 여럿 모였는데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도끼를 잡고 어떤 이는 톱을 쥐고 그 목수를 향하여 둥그렇게 둘러 서 있었다. 그 목수는 왼손엔 긴 자를 오른손엔 막대기를 쥐고 가운데 있었다. 그는 집을 짓는 데 쓰일 목재들을 헤아리고 나무들의 용도를 살핀 뒤, 그의 막대기를 휘두르며 “저기엔 도끼!” 하고 말하니 도끼를 잡고 있던 공인이 오른쪽으로 뛰어갔다.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엔 톱!” 하고 말하니 톱을 쥔 공인이 왼쪽으로 뛰었다. 잠시 뒤 도끼로 깎고 톱으로 자르고 하는데 모두들 목수의 기색을 살피고 지시를 기다리면서 어느 한 사람도 감히 자기 멋대로 하지 못하였다. 제대로 작업을 해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목수가 노하여 물러가게 하여도 아무도 감히 화를 내지 못했다.

그는 건물의 그림을 담 위에 그려 놓았는데 크기는 한 척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규격은 매우 상세하고 정확하였으며 치밀한 계산으로 커다란 건물을 짓는 데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 집이 완성되자 대들보에 ‘몇년 몇월 몇일 아무개가 지음’ 이라고 썼는데 자신의 성명을 쓸 뿐 작업을 한 공인들은 열거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본 뒤 크게 놀라고 나서야 그 목수의 기술이 교묘하면서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 『계곡집谿谷集』에 인용된 유종원의 「재인전梓人傳」

 

▲ 흥인지문 상량기록 中

열두편수를 거느린 대목장
고종조 서울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상량기록을 보면 목수편수木手邊手를 책임자로 하여 각 공정별로 세분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편수는 열두 편수를 이끌어야 한다.’는 구전이 구체화된 자료이다.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편수 한 명이 거느린 일반 장인은 대략 30명 정도이니, 목수편수 한 명이 대략 360명 정도의 장인을 이끄는 셈이다. 여기에서 목수편수는 곧 대목장이다.(상단 표 참조)
 자료제공 _ 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정리 _ 박광윤 기자 pky@imwood.co.kr